원철 스님이 옛 문헌에서 가려뽑은 한시

 

[문학뉴스=백승 기자]흔히 ‘한시는 어렵다’고 말한다. 요즘 대중에게 익숙하지 않은 한자로 기록된 것이 첫 번째요, 한정된 글자 안에 많은 뜻을 담고 있기에 그 의미를 모두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이 두 번째 이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시에는 ‘특별한 것’이 숨겨져 있다. 그건 한시를 쓴 이들이 문인이나 학자, 승려 등 당대의 지식인이라고 불릴 수 있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불교계 대표 문장가이자 한문 고전의 대중화에도 힘쓰고 있는 원철 스님이 옛 문헌에서 가려뽑은 한시의 명구만을 옮기고, 이를 바탕으로 그 속에 담긴 이야기와 의미를 더한 책이 나왔다. 불광출판사에서 펴낸 ‘아주 오래된 시에서 찾아낸 삶의 해답’이 바로 그것. 부제로 혼자라도 걱정 않는 삶이라고 달았다.

이 책에서 저자가 알려주는 것은 ‘한시’를 분석하고 번역하는 방법이 아니다. 한시는 소재일 뿐, 그 안에 숨겨져 있는 ‘사람’과 우리들의 삶, 더불어 세상을 살아가는 법에 말한다. 이를 통해 옛사람들의 가르침을 어떻게 거울 삼아 오늘을 살아가야 할 것인지 알 수 있다.

이 책에 수록된 59편의 글은 각기 다른 한시 구절을 주요 소재로 삼았다. 그 가운데에는 마음이 철렁하다 싶을 정도로 내 생각을 깨부수어 주는 구절도 있고,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게 하는 구절, 지난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구절도 있다.

중국의 도연명과 야보 도천 선사, 한국의 김병연(김삿갓)과 사명 대사, 일본의 사이초 대사까지 나온다. 한국・중국・일본이라는 지리적 차이와 승속을 막론하고 옛 문헌 구석구석에 숨겨져 있던 한시를 찾아 핵심 구절만 옮기고 새롭게 이야기와 의미를 더했다.

여기에 저자 원철 스님은 각종 문헌과 경전을 참고하여 한시만으로는 알 수 없는 ‘뒷이야기’를 달고, 스님 나름의 의미를 덧붙였다.

중국 야보 도천 선사가 『금강경』 해설로 달아 유명해진 구절인 “빈 배에 가득히 허공의 밝은 달만 싣고 돌아온다(滿船空載月明歸)”의 원작자가 뱃사공 노릇을 하며 수행에 정진했던 화정 덕성 선사임을 알려준다. 이어 원 저자의 공덕에 못지 않은 대중화의 공로를 치하하는가 하면, 조선시대 최한경이 첫사랑에 대해 읊은 “꽃밭에 앉아 꽃잎을 쳐다본다. 아름다운 색깔은 어디에서 왔을까?(坐中花園 瞻彼夭葉 兮兮美色 云何來矣)”라는 구절을 보고 ‘아름다움’에는 시간적인 요소가 포함될 것이라고 덧붙인다.

그런가 하면 다산 정약용이 자신보다 먼저 입적한 10살 어린 스님 친구를 위해 쓴 탑명(塔銘)을 보며 두 사람의 나이를 초월한 우정과 이로부터 시작된 불가(佛家)와 유가(儒家)의 교류를 되짚어보기도 한다.

또 계곡 물과 구름, 꽃향기와 종소리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이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모습을 노래한 백거이의 시를 통해서 시대의 화두로 등장한 관계성에 대해 사유한다.

이처럼 원철스님은 한시 속에 숨겨진 가치를 에둘러 짚어준다. 사소하게 여기고 지나친 익숙한 것들에 내가 몰랐던 의미가 있을 수 있다는 것, ‘함께 한다’는 것에는 어떤 조건도 필요없으며 예상치 못했던 힘을 발휘할 수도 있다는 것,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살아가면서도 세상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중심을 지켜나가야 한다는 것 등이다.

흔한 힐링이나 위로, 어떤 충고도 쉽게 하지 않는 저자 원철스님은 우리 스스로 그 답을 알아낼 수 있도록 넌지시 알려준다. 이를 통해 세상과 떨어져 혼자라고 느껴질 때에도 두려움 없이 당당히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만든다.

오랜 시간 사람들의 손을 거쳐 기록되고 가슴에 새겨져서 전해진 이 짧은 문장 속에는 당대의 사상가와 문장가들이 남긴, 시간을 초월하여 곱씹을 만한 무언가가 숨어 있다. 시간을 초월하여 현재까지 한시가 읽히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