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환 장편소설 『붉은 고래』 연재

[『붉은 고래』 1권 (7)]

 

《큰시야》

새벽에 때아닌 장대비가 내린 이튿날에는 아침부터 햇살이 좋았다. 작은형이 학교에 가고 나니 우리 집 마당이 알맞게 촉촉해졌다. 큰방의 길다란 괘종시계가 아홉 번을 쳤다. 미취학 코흘리개들이 예배당 앞 공터에 모여들 시간이었다. 언제나 그 자리에 일등으로 나타나는 편이었던 내가 가장 늦은 지각으로 나갔다. 꼬마들은 벌써 서너 패로 나눠져 ‘딱지치기’를 벌이고 있었다.

늑장으로 나온 나는 야무지게 벼르고 있었다. 그저께 빼앗긴 딱지 열 장을 도로 찾고 열 장쯤 더 빼앗겠다는 각오였다. 준비는 되어 있었다. 내가 꼴찌로 나타난 까닭도 실은 출정의 준비가 늦어진 때문이었으니까.

딱지치기, 이것은 허경욱의 세계에서 놀이가 아니었다. 자존심이 걸린 싸움이었다. 동갑내기 패에선 대장으로 등극했으나 그저께 한두 살 더 먹은 패에 덤벼들었다가 딱지들을 모조리 빼앗겼던 나의 눈에 큰형의 방은 승리를 보장할 훌륭한 무기들로 넘쳐나는 병기고였다. 큰형은 다락방에 숨어 있으니 부모님만 따돌린다면 그것들은 맘껏 내 차지가 될 수 있었다.

작은형이 책보자기를 둘러메고 나간 뒤에 나는 동네를 한 바퀴 도는 척하고 대문을 나섰다가 도둑고양이처럼 날렵하게 집의 오른쪽 옆구리에 서향으로 붙은 큰형 방으로 잠입했다. 주인이 없어진 뒤로는 쌀, 보리, 콩, 마늘, 고추 등 일용의 양식을 갈무리하는 창고 비슷하게 쓰는 방에서 제일 띄는 물건은 책이었다. 책상도 책꽂이도 없었지만 방의 한쪽 벽면은 벽돌로 낮은 담을 쌓은 것처럼 온갖 책이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었다.

나는 종이가 말끔하고 두터운 책 두 권을 꺼냈다. 나의 작전은 치밀했다. 복수에 성공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 두터운 종이로 ‘빵빵한 딱지’를 접고 그것을 다시 발로 자근자근 밟아서 납작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 먼저 나는 책을 한꺼번에 두 장씩 뜯어냈다. 빵빵한 열 개의 딱지를 가지려면 마흔 장이 필요했다. 두 장씩 겹으로 붙여 딱지를 접어야 하니까 딱지 하나에 넉 장 든다는 셈이었다.

아무도 없는 방에서 딱지 접기에 몰두한 나의 얼굴에는 복수와 승리를 향한 진지한 집념이 뚝뚝 떨어지지 않았을까. 큰형에게는 정신적 자산이 될 책이 코흘리개 막내의 자존심을 되세우려는 무기로 태어나는 현장에는 숨 소리와 종이 소리마저 무겁게 가라앉는 가운데, 이윽고 앙증맞은 발치에 열 개의 빵빵한 딱지들이 십층석탑 모형처럼 쌓였다. 이것들을 자근자근 모질게 밟는 수고는 흙이 있는 데로 나가서 해야 되겠다는 생각에 엉덩이를 일으킨 내가 다시 주저앉았다. 뭔가 허전한 구석을 금세 알아차렸다. 대장 딱지와 부대장 딱지가 없다, 이것이 문제였다. 졸개 딱지 두 개가 연속으로 뒤집힐 때 즉각 내놓아야 할 부대장 딱지, 졸개 딱지 네 개가 연속으로 뒤집히거나 부대장 딱지마저 적의 수중으로 넘어갔을 때 배수진을 치듯 땅바닥에 내려야 할 대장 딱지. 나는 결심했다. 대장과 부대장을 가지려면 표지를 탐낼 수밖에 없다고. 꾸물대지 않고 두꺼운 표지 여덟 장을 뜯어내서 두 개의 딱지를 더 만들었다.

열두 개의 새 딱지를 양손에 끼고 늠름한 부하들을 거느린 장수처럼 어깨에 힘이 들어간 나는 교회 앞에서 복수의 도전장을 던졌다. 그저께 허경욱의 딱지를 열 개나 빼앗아가며 자존심을 뭉갠 강적 강석표 . 나이로는 나보다 한 살 더 먹었고 놀이터에 모인 꼬마들 중 어깨가 제일 벌어졌으며 그저께까지 딱지치기의 대장 자리를 지킨 녀석.

“와, 샌삐네.”

가위바위보에서 진 내가 졸개 딱지 하나를 먼저 땅바닥에 내려놓자 석표가 검정 고무신의 왼발을 그 옆에 나란히 세우며 즐거워했다. 마치 달싹한 미제 사탕을 탐내는 때처럼. 딱지를 거머쥔 그의 오른손이 귀 위에 붙었다가 거의 60도 경사를 이루며 힘껏 내리쳤다.

“팍!”

석표의 딱딱한 딱지가 비스듬히 내리찍자 나의 새 딱지가 왼쪽으로 밀렸다. 하지만 그의 검정 고무신 밑에 살짝 끼었을 따름이었다.

“에이, 똑바로 때릴걸.”

석표가 아쉬워했다. 그러니까 자기 딱지를 평평하게 해서 수직으로 힘껏 내리쳐 딱지와 딱지가 순간적으로 한 몸이 되게 하는 방법을 썼더라면 나의 새 딱지가 발랑 뒤집혔을 것이란 뜻이었다.

“이거는 내 거네.”

나는 그저께 내 손에 들어 있었던 딱지 옆에다 흰 고무신의 오른발을 붙이고 딱지 쥔 왼손을 정수리 높이로 쳐들었다. 똑바로 내리치기보다는 방금 석표가 실패한 방법을 따르는 것이 효과적일 듯했다.

“퍽!”

석표의 딱지, 빼앗겼던 나의 딱지가 맥없이 뒤집혀 주인의 흰 고무신 위에 엎어졌다.

“또 대라.”

게임의 법칙은 이긴 자가 계속 공격하는 것이었다.

“네 딱지 또 대지 뭐.”

석표가 그저께 따먹은 딱지 한 장을 땅바닥에 내려놓고 발로 한 번 밟았다.

“밟기 있나?”

내가 볼멘소리를 냈다. 반칙이라는 항의였다.

“좋다. 댈 때 밟기 없기로 하자.”

석표가 윗몸을 구부려 빵빵한 딱지를 살짝 들었다가 도로 놓았다. 이번에는 똑바로 때리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을 세웠다.

“뻑!”

딱지와 딱지가 부딪치는 소리가 어른의 힘찬 박수 소리보다 세게 터지는 것과 동시에 내려친 딱지가 반 뼘가량 뛰면서 밑의 딱지를 발랑 뒤집어 놓았다.

“네 딱지들은 나한테 첩자로 와 있었나. 한 방에 엎어지네.”

석표가 투덜거리며 또다시 그저께 따먹은 나의 딱지를 골랐다. 이번에도 나는 똑바로 때렸고, 땅바닥의 딱지가 아슬아슬하게 뒤집혔다. 큰형의 책으로 만든 빵빵한 딱지가 기대했던 힘을 발휘하는 것이었다. 나의 얼굴이 후끈하게 달아올랐다. 코흘리개 꼬마의 보드라운 볼에 맺힌 붉은빛, 그것은 아마 복수의 쾌감이었을 것이다.

나는 석표한테 완승을 거두었다. 굳이 대장 딱지를 동원할 필요도 없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내놓은, 두터운 양철로 만든 듯한 딱지를 나의 부대장 딱지가 수직으로 내리쳐 단번에 앞뒤를 뒤바꾼 것으로 깨끗한 항복을 받아냈다.

다른 아이들과의 게임에서도 나는 손쉬운 승리를 거두었다. 내가 완전히 평정한 날이었다. 점심때나 되어 딱지 한 아름을 안고 집으로 돌아오는 나는 왼팔이 욱신거렸으나 개선장군의 기분이었다. 하지만 집에는 아직 막내를 환영할 식구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아랫방에 딱지를 넣고 손도 씻지 않은 채 큰방으로 들어서자 소스라치게도 큰형이 다락에서 내려왔다.

“큰시야, 내가 오늘 다 이겼다.”

웃음꽃이 활짝 피었을 내 얼굴을 큰형이 사납게 노려보았다.

“경욱이 너, 이리 앉아봐.”

나는 얌전히 큰형 앞에 앉았다.

“그렇게 앉을 자리가 아닐 텐데.”

나는 방바닥에 붙어 있던 엉덩이를 얼른 두 발의 뒤꿈치 위에 내려놓았다.

“왜 꿇어앉아야 하는지 알겠나?”

목소리가 착 가라앉은 큰형의 턱밑에서 나는 수그린 고개를 두어 번 끄덕였다.

“그러면 말을 해봐라.”

“큰시야 책을 뜯어가지고…….”

내가 말끝을 흐렸다. 콧잔등이 시큰거리고 목이 잠기려 했다.

“아까 책을 찾으러 들어갔다가 많이 놀랐다. 나의 책을 뜯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게 아니고 책을 뜯었다는 것, 그게 중요한 문제다. 책을 소중하게 여길 줄 모르는 사람은 결코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없다. 책을 함부로 취급하는 것은 자기 부모나 스승을 욕되게 하는 것과 똑같다.”

큰형은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했다. 나의 눈물이 뚝뚝 방바닥에 떨어지고 있었다.

“오늘 오후부터라도 경욱이는 경윤이한테 글을 배워라. 작은형이 영리하니까 잘 가르칠 거다. 작은형한테는 내가 따로 얘기를 해놓겠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책과 친하게 지내고 또 책을 존중하라는 거다. 약속할 수 있겠나?”

나는 수그린 고개를 서너 차례 끄덕였다.

“좋다. 딱지치기에 이긴 거, 진짜로 축하한다.”

큰형이 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포근한 손길이었다.

“눈물 닦아라. 곧 엄마 오실 건데, 사내 대장부가 함부로 울면 못쓴다. 밖에 나가서 무등 태워주고 싶은데, 나가면 안 되니까 방안에서 말 태워주께. 자, 타라. 어서. 축하를 해주는 거다.”

큰형이 내 앞에 엎드렸다. 두 손바닥과 두 무릎으로 빙글빙글 기어다닐 말을 나는 울다가 웃는 묘한 얼굴로 올라탔다.

“경욱이는 큰 소리로 웃지 못하고 나는 말 울음소리를 못 내니 답답하구나.”

묵묵히 방을 두 바퀴 돈 큰형의 독백 같은 말이었다.

“큰시야, 그래도 너무 좋다.”

내가 턱을 큰형의 목덜미에 대고 소곤거렸다.

“우리 경욱이 좋으면 됐다.”

큰형이 방바닥에 소곤거렸다. 그리고 우리는 대화를 쉬었다.

열 바퀴였나, 열다섯 바퀴였나. 마당에 인기척만 없었더라면, 어머니가 점심을 차리러 오지 않았더라면, 나는 큰형의 등에 개구리처럼 엎드려 낮잠이라도 들었을 것이다.

 

《작은 고추》

“때앵! 때앵! 때앵⋯⋯!”

높다란 종루의 꼭대기에서 종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었다. 작은형과 나는 방문을 열었다.

“여기부터 시작하자.”

“응.”

작은형과 나는 마당 복판에 깔아둔 멍석 가장자리에 쪼그려 앉았다. 멍석에는 선홍빛 고추들이 빼곡이 널려 있었다. 우리 형제는 시장 나간 어머니의 분부대로 주일 오전의 예배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에 맞춰 고추를 뒤집으러 나온 것이었다.

“시야는 예배당 안 가고 싶나?”

내가 물었다.

“시야라 부르지 말고 형아라 부르라고 했는데, 그새 또 까먹었나? 그래가지고 학교 들어가면 공부나 하겠나?”

작은형이 제법 점잖게 나무랐다. 큰형의 뜻에 따라 막내의 가정교사 노릇을 시작했으니 아우에게 톡톡히 어른 행세를 하려는 모양이었다.

“시야가 듣기에 해롭나?”

“그래, 형이라 불러라. 형아라 해도 좋고.”

토라지는 기색으로 붉은 고추 하나를 뒤집은 나는 작은형의 단호한 반응에 더는 볼멘소리를 내지 못했다.

어제 오후였다, 작은형이 나에게 앞으로 ‘시야’라 부르지 말고 ‘형아’라 부르라는 지시를 내린 때는. ‘형아’가 ‘히야’로, ‘히야’가 더 쉬운 사투리 발음인 ‘시야’로 굳어졌을 테지만 ‘시야’에선 어쩐지 일본말 냄새가 난다고 하신 담임선생님의 말씀을 귀담아듣고 와서 곧바로 아우의 말버릇을 고쳐놓자고 덤벼든 것이었다. 그런 말씀을 듣고 나서도 나한테 ‘시야’란 소리를 듣게 되면 깨끗한 새 옷에 흙탕물 튀는 것처럼 기분이 찜찜해진다나 어쩐다나.

“형아는 예배당 안 가고 싶나?”

나는 ‘형아’란 발음에다 호박씨 심을 자리에 대침 찌르듯 힘을 넣었다. 작은형이 아우의 아니꼬워하는 꼴을 눈감고 지나갔다.

“문제 두 개 내서 다 맞추면 대답해주지.”

“좋다, 내 봐라.”

내가 선뜻 자신감을 비치는데,

“에취! 에취!”

작은형이 재채기를 했다.

“형아, 맵제?”

“코가 쪼끔 간지럽네.”

따가운 햇볕 속의 빨간 고추 멍석 위에 나란히 앉은 우리 형제는 시선을 마주치며 샐쭉 웃었다.

“자, 문제 낸다. 첫 번째 문제다. 가을 햇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무슨 문제가 그래?”

“동시 짓는 문제라고 생각해라.”

“아, 그런 거? 그거야 가을 햇살은 빨간 물감, 노란 물감이지. 우리 마당 멍석에선 빨간 물감, 동네 은행나무에선 노란 물감.”

내가 재잘재잘 읊어댔다.

“아주 잘하네. 상 줘야 되겠다.”

작은형이 팔을 뻗어 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우리 형제의 엉덩이 뒤로는 네 개의 굵은 선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한 뼘씩 찬찬히 나아가는 우리의 긴 발자국이었다.

“다른 문제다. 여기 널린 고추가 정확히 몇 개나 되겠나?”

“그거야 한 개씩 세봐야 알지.”

“그렇겠지. 그러면 가장 빨리 셀 수 있는 방법은?”

나는 손놀림을 멈춘 채 눈썹 하나 까닥이지 않고 뚫어지게 붉은 고추 하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손으로 한 개씩 셀 수밖에 없지 뭐. 그러니 여러 사람 불러와서 빨리빨리 세라고 하고 다 끝나면 전부 더하기로 합치면 되겠다.”

나의 답에는 첫 번째보다 자신감이 빠져 있었지만, 작은형은 이번에도 나의 머리부터 쓰다듬었다.

“정답이 없는 문제였는데, 아주 잘했다. 당장 학교 보내도 되겠다.”

“형아, 학교 가면 쌈도 잘해야 되나?”

“공부가 제일이고, 그 다음이 운동이나 싸움이다.”

“형아는 공부는 일등인데, 쌈은 몇 등이고?”

“운동도 철봉 같은 거는 일등이다. 쌈은 덤비는 애가 없어서 몇 등인지 모른다.”

“이제는 형아가 대답할 차례다. 형아는 예배당 안 가고 싶나? 어떤 날은 맛있는 미국 과자도 준다는데?”

아우가 미국 과자에 홀려 예배당 가고 싶어한다는 것을 대뜸 알아챈 작은형이 고추 열 개쯤을 더 뒤집고 나서 고개를 틀었다.

“경욱이도 왜놈들 신사 알지?”

“안다. 예배당이 원래는 신사였잖아.”

“그래. 너는 너무 어려서 모르는 일인데, 내가 너만했던 겨울에 신사에 불이 나서 소동이 일어났다. 요새 동네 어른들은 그때 우리 형님이 불질렀다고 한다.”

“정말이가?”

“그거야 나도 모르지. 다락에 올라가서 물어볼 수도 없고⋯….”

“형아는?”

내가 형 노릇을 하듯 눈을 크게 떴다. 우리 집에선 ‘다락’도 금지된 말이었다.

“알았다.”

작은형이 빨간 고추의 끄트머리로 나의 이마를 콕콕 찔렀다.

“형아 말은, 예배당 가지 말자는 거지?”

“그런 자리에 생긴 예배당에 나가는 게 좋은지 안 나가는 게 좋은지, 이 문제는 형님한테 물어볼 필요도 없는 거다.”

“왜?”

내가 새로운 궁금증에 끌리고 있는데 그림자 하나가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아직 뒤집어야 할 붉은 고추는 절반 넘게 남아 있었다.

“내년 봄에는 포항에서 이 집 고추장이 제일 맛있겠네.”

회색 바지에 청색 잠바를 걸친 아저씨가 전혀 스스럼 타지 않고 성큼성큼 멍석으로 다가섰다. 키 큰 장 형사였다. 나는 속으로 흠칫 놀랐다. 일주일에 한두 번씩 나타나는 사람이지만 오늘은 다락에 큰형이 숨어 있으니 놀랄 수밖에. 작은형이 무심한 척 목례를 보냈다. 나도 따라서 했다.

“잘 있었나?”

장 형사가 멍석 곁에 똥 누는 자세로 앉아 살갑게 말을 걸어왔다. 나는 잠자코 있기로 마음을 정했다.

“왜 또 왔어요?”

작은형이 시큰둥하게 쏘았다. 내가 느끼기엔 늘 해온 그대로 같았다.

“올 때마다 그런 눈으로 보나? 내가 늑대냐 범이냐?”

장 형사가 싱겁게 웃었다.

“아저씨는 늑대도 아니고 범도 아니고, 형사지요.”

“맞다. 그러면 너희는 늑대냐 범이냐?”

“사람요.”

작은형의 빠른 대꾸는 목소리가 차가웠다.

“사람? 그러면 손님이 왔는데 내쫓을 눈으로 보면 돼?”

장 형사가 익살을 부리자 작은형의 눈빛이 약간 무디어졌다.

“우리 시야 붙잡았어요?”

자못 신경질적으로 내뱉은 나의 물음에 장 형사가 움찔 놀랐다.

“아직도 안 붙잡히고 있네. 붙잡기만 하면 너하고 꼭 만나게 해주겠다고 했던 그 약속은 반드시 지키겠다, 알겠나?”

그가 똑바로 허경욱을 쳐다보았다. 입가엔 미소가 피었으나 눈빛이 매서웠다. 나는 엉겁결에 고개를 끄덕이고 왼손으로 고추 세 개를 뒤집었다. 부모형제 중에 나 혼자만 왼손잡이였다. 처음엔 숟가락도 젓가락도 연필도 왼손으로 잡았으나, 어버이의 끈질긴 꾸지람과 잔소리 덕분에 쓰고 먹는 것은 오른손으로 옮겼고 돌팔매질, 물건 집기, 칼싸움, 딱지치기 따위의 여러 동작에선 늘 왼손이 먼저 나갔다. 힘도 오른팔보다 왼팔이 셌다.

“만약 생포가 안 되고 사살하게 되면 그 약속은 못 지키게 되지요?”

작은형이 싸늘히 물었다. 장 형사는 오금이 저리는지 몸을 일으켰다.

“어른들은 집에 없구나.”

“예.”

“내가 왔더라고 해라.”

“예.”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 알지?”

“예.”

“요 작은 고추들아, 아저씨 간다.”

“예.”

작은형과 내가 일어나서 고개를 수그렸다.

“그대로 앉아라.”

작은형이 고무신 신으러 갈 것처럼 한 발 떼는 나에게 착 깔린 소리로 날카롭게 쏘았다. 배웅 나가는 척 할 것 없이 하던 일이나 계속하자는 뜻을 나는 냉큼 알아먹었다. 찌푸린 눈살로 장 형사의 꽁무니를 좇다가 얼굴을 치켜세운 나의 시선에 예배당 꼭대기의 십자가가 잡혔다.

 

《안네》

히틀러의 지하 벙커와 대칭점에 놓였던 안네 프랑크 하우스. 그 삐걱거리는 목조 계단을 시우와 나는 빠짐없이 오르내리고 이 방 저 방 모조리 들락거렸지만 머문 시간은 기껏 이십 분에 불과했다. 하루가 한 달만큼 길고 지루했을 안네의 두 해에 비한다면 우리의 이십 분은 불안과 공포의 감옥에 갇힌 한 소녀가 뱉은 한 번의 조마조마한 호흡처럼 짧은 것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내 마음에 드리운 안네의 그림자는 길다랗고 무거웠다. 그것을 감당하기 버거워 레스토랑에 앉아 긴 글부터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집에서 챙겨온 세 권 중의 하나인 해묵은 문고판 『안네의 일기』를 탁자 위에 올려놓은 채로 . 볼펜을 놓고 나가면 우표부터 구할 생각으로 시작했다가 다 쓰고 나서 새로 읽은 뒤에는 너무 이른 것 같아 부치지 않았던 편지. 이제 여기에 붙여둔다.

 

[나치 정권의 잔학함을 세상에 알린 '안네의 일기'를 쓴 안네 프랑크(왼쪽)와 가족들이 숨어 살았던 다락방의 위장 출입구였던 책장. 사진 출처=위키피디아]
[나치 정권의 잔학함을 세상에 알린 '안네의 일기'를 쓴 안네 프랑크(왼쪽)와 가족들이 숨어 살았던 다락방의 위장 출입구였던 책장. 사진 출처=위키피디아]

사랑하는 나의 딸, 승연아. 아버지는 안네의 집에 들렀다가 이 편지를 쓰고 있다.

안네의 나이를 역사의 현장에다 고정시켜놓는다면, 승연이와 또래가 되겠구나. 그래서 지금 나는, 내 마음을 덮고 있는 안네 프랑크 하우스의 그림자를 나의 딸에게 그대로 보여주고 싶다. 승연이도 지난 겨울방학에 『안네의 일기』를 읽었으니, 아직은 기억이 생생하겠구나.

학교에서 수다쟁이에 말괄량이로 찍힌 안네. 그만큼 명랑하고 쾌활했다는 뜻이겠지. 어른의 눈에는 더러 버르장머리 없는 계집애로 비쳤을 테고, 그것이 안네에겐 더러 억울한 상처로 남기도 했을 거야. 프린센흐라흐트 263번지. 안네 가족들이 드디어 역사에 길이 남을 비밀의 장소 ―오늘날 암스테르담을 방문한 관광객에게 찾아보지 않으면 인간의 도리를 저버리는 듯한 강박관념으로 자리잡은 안네 프랑크 하우스 ―로 옮겨가는 진풍경을 묘사하는 필치에도 안네의 그런 성격이 물씬 배어있지 않니?

“날씨는 무더웠고⋯⋯. 나는 내의를 두 벌이나 껴입고 팬티를 석 장이나 입은 위에 드레스를 입고 다시 그 위에 스커트와 재킷, 여름 코트⋯⋯.” 이런 가족의 모습을 안네는 ‘북극 탐험이라도 떠나는 사람’에 비유했는데, 만약 이 모습을 영화로 찍는다면 어떨까 ? 이글거리는 태양이 내리쬐는 거리의 나치 깃발과 방 안에서 겹겹이 옷을 껴입는 사람들의 동작을 대비시키고, 북극 탐험을 떠나는 듯한 차림으로 태연하게 폭염의 거리를 걸어가는 유대인들의 등허리를 나치의 깃발이 가소롭게 비웃는 것처럼 내려다보고……. 뛰어난 안목을 지닌 감독이라면 이 몇 장면의 아주 건조한 대비로써 아우슈비츠의 습도 높은 그 나신의 참극을 예감케 할 수 있겠지. 판단 부인의 모자 상자 안에서 뜻밖에도 침실용 요강이 튀어나오는 장면에선 눈물 맺히는 폭소를 유도할 수도 있겠지. 비극에도 쉬어 가는 대목이 있어야 관객들은 지치지 않을 테니.

안네가 커튼을 살짝 젖히고 바깥을 훔쳐볼 수 있었던 창. 그것은 아버지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오랜 세월을 갇혀 지내본 사람만 알 수 있다. 목숨과 같은 창의 소중함을! 독방 안에 쪼그려 앉아 바람벽 꼭대기의 통풍구 쇠창살 사이로 파란 하늘 한 조각을 발견하는 것은 정말이지 목마른 그리움을 푸는 것에 버금갈 만한 감격의 순간이 되기도 하지. 좁은 방에 오래 갇혀 있었던 사람은 운동장에 나서게 되면 운동장을 이 세상에서 제일 커다란 창이라고 착각하기도 하지. 파란 하늘, 하얀 구름을 마음껏 볼 수 있는 거대한 창.

만약 안네가 바깥세상을 염탐할 수 있는 창을 가지지 못했더라면, 아마 안네의 명랑한 성격이 가장 먼저 바스러지지 않았을까. 꽃병에 오래 꽂아둔 한 떨기 장미꽃이 시나브로 바스러지는 것처럼 그렇게 말이다. 바깥세상과의 소통은 상상력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육안으로 바깥세상의 어떤 사물을 확인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져야만 한 가닥이라도 바깥세상과의 온전한 소통이 가능해질 수 있다. 또한 그것은 갇힌 사람이 자신의 밝은 성격을 다치지 않는 길이기도 하다. 설령 바깥세상엔 슬픔과 비극만 기다리고 있다 할지라도.

가령, 안네는 ‘해질 무렵에 자주 창가에 숨어 착하고 죄 없는 사람들이 울부짖는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줄지어 터벅터벅 걸어가는 것’을 지켜보는가 하면 ‘독일군이 따라붙어 쓰러지려는 사람들을 떼밀거나 걷어차면서 무섭게 몰아세우는’ 비정한 광경을 목격하지 않았니? 그래도 안네 개인에게는 바로 그 바깥이 비밀의 은신처만큼이나 소중했을 거야. 감옥살이와 다름없는 생활을 꼬박 일 년이나 감당한 어린 소녀가 새벽에 일어나 침대 밑의 함석으로 만든 요강을 쓰면서 “이것을 쓸 때는 언제나 숨을 죽여야 해요. 조심하지 않으면 마치 계곡에서 급류가 쏟아지는 듯한 소리가 나기 때문이에요.” 하는 보고를 하고 있는데, 이 표정은 안네의 명랑한 성격이 다치지 않고 잘 보존되고 있었다는 단적인 증거일 거야 . 눈으로 바깥세상과 접촉할 수 있었기에 거의 다치지 않을 수 있지 않았을까?

안네에게는 바깥세상과 직접 소통하는 또 하나의 너무너무 소중한 창이 있었지. 승연, 그것이 무엇이었을까? 그래, 라디오. 절망의 늪에 빠진 안네에게 비친 희망의 빛, 이것이 라디오였다. 문명의 조그만 이기가 연약한 인간을 위해 봉사하는 실증을 안네의 라디오만큼 훌륭하게 보여주는 것을 또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연합군의 상륙 작전이 시작된다는 소식, 처칠이 폐렴에서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는 소식, 인도의 평화주의자 간디가 몇십 번째 단식에 들어갔다는 소식, 오늘이 연합군 상륙 작전의 ‘디데이’라는 소식. 라디오의 뉴스는 대포 소리와 폭격 소리에 오들오들 떨며 지내는, 목숨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감옥을 선택한 소녀에게 얼마나 큰 위안이 되고 용기가 되었을까.

내가 승연이의 손을 잡고 안네의 집을 찾았더라면, 나는 그 집을 나서며 네게 반드시 이런 말도 했을 거야. 인간의 언어는 자신의 체험에 의해 그의 내면에서 자신만의 각별한 의미로 거듭 태어나는 법이라고. 사전에 나오는 낱말의 뜻은 체험 속에서 확연히 달라지게 된다. ‘봄’이라고 불러보자. 봄, 꽃이 피는 계절. 그렇지. 흔히 사람들에게 봄은 꽃이 피는 계절이다. 그러나 감옥과 다름없는 방에 틀어박힌 채 크리스마스를 두 번씩이나 보낸 안네가 햇살 빛나고 하늘 맑게 개인 어느 한낮에 창의 틈새로 스며드는 바깥공기를 심호흡으로 들이켜고 나서 “지금 나의 가슴속에는 봄이 들어와 있다.” 하는 고백을 했을 때, “그 봄이 눈을 뜨기 시작했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낀다.” 하고 털어놓으며 안절부절못하고 있었을 때, 과연 우리가 안네의 그 ‘봄’을 단순히 꽃피는 계절로만 치부할 수 있겠니? 그렇다면 그 사람은 무식하거나 잔인한 것이지. 그렇지 않고서야 누가 감히 안네의 영혼에는 영원한 안네만의 ‘봄’이 탄생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있겠니?

‘어둠’도 그렇고 ‘빛’도 그렇다. 개인의 체험과 시대적 조건을 통해 굴절되고 전복되며 거듭나는 언어. 아, 삶이란 자기 고유의 언어를 하나씩 터득해나가는 과정인지 몰라. 특히 젊은 날에는!

아버지가 안네의 집을 지켜선 이 절기는 안네가 일기에서 “지금 나의 가슴속에는 봄이 들어와 있다.” 하고 고백했던 그때와 거의 일치할 것이다. 안네의 집 앞, 운하의 둑처럼 생긴 길가에는 족히 백 년은 묵었을 나무가 지키고 있다. 아직 잎사귀는 없지만 지금쯤 거친 피부 속으로 봄기운을 맞이하고 있을 그 나무의 이름을 알 수 없다만, 나신의 거수는 안네의 불안한 눈빛과 숨결을 나이테 안에 간직했을 테지.

내가 그 튼튼한 나무에 등을 기대어 담배를 물고 있을 때였다.

“저것 보세요.”

시우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으로 바삐 내 시선이 따라갔다. 그가 정확히 겨냥하듯 가리킨 것은 허공의 십자가. 안네의 집 옆에는 교회가 있다. 안네의 집보다 훨씬 늙어 보이는 건물이다.

“안네가 숨어 지내는 동안에도 저 교회에서는 종이 울렸겠지요. 하나님이 어린양들을 불러 모으는 목소리나 되는 것처럼 종소리는 은은히 멀리멀리 울려퍼졌겠지요 .”

풍자의 시를 읊는 듯한 조카의 말을 아버지는 쓸쓸히 받았다.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가 있잖아. 그 제목을 저 교회의 십자가 밑에다 현수막처럼 세로로 길게 늘어뜨려놓으면 아주 어울릴 것 같지 않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삼촌 말씀대로 저 교회에다 그런 현수막을 걸어놓으면, 여길 찾아오는 백인들이 그걸 보고 서양 문명의 핵심에 대해 한번쯤 반성할 수도 있겠군요.”

우리 일행을 싣고온 노란색 배가 다음 행선지로 떠나려 했다. 하지만 시우와 나는 다음에 오는 것을 타기로 했다. 티켓은 정해진 구간 안에서 자유롭게 내리고 탈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내가 꽁초를 고목 밑동에 버리고 나자 빨간색 보트가 닿았다. 한 무리의 백인들이 떠난 안네의 집에 또 한 무리의 백인들이 들어갈 것이었다.

조카와 나란히 교회 앞으로 천천히 걸어가며 나는 안네의 일기에 등장하는 종소리를 생각했다. 안네의 식구들이 비밀 장소로 거처를 옮겨 며칠을 보낸 뒤의 일기에 단 한 번 채집된 그 종소리. “아빠와 엄마, 언니는 서쪽 교회에서 십오 분마다 울리는 종소리가 귀에 거슬린다고 야단입니다.” 하고 안네는 자신의 일기장인 ‘키티’에게 일러바치지. 아마도 우리 두 사람이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란 현수막을 내걸었으면 좋겠다고 한 교회에서 그 거슬리는 종소리를 보냈겠지. 나는 거듭 묻고 있었다. 정말 그때 그 종은 누구를 위하여 울리고 있었을까? 구원은커녕 위안도 되지 못한 채, 아니 위안은커녕 짜증만 불러일으킨 그 종은?

승연아. 여기가 끝이었다. 그 질문이 아버지를 안네의 집 근처에 더 머물 수 없게 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