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환 장편소설 『붉은 고래』 연재

[『붉은 고래』 3권 (10)]

 

 

《비뚤어진 계급장》

거짓말 탐지기와 최후 대결을 마치고 외톨로 갇혀 호젓함을 누리고 있는 허경욱을 또 불러냈다. 나는 심장이 오므라드는 기분이었다. 아무래도 보복을 당할 것만 같았다.

“차를 타야 돼.”

신사복의 한국인 사내가 사근사근하게 나왔다. 영 낯선 얼굴은 아니어서 잠깐 되짚어보니 내가 마지막으로 기계와 벌이는 대결 장면을 처음부터 끝까지 두어 발 떨어져 묵묵히 지켜본 구경꾼이었다. 그 점이 꺼림칙했다. 신사복 차림이긴 해도 머리칼 모양새로나 말씨로나 틀림없이 군인일 그가 친절하게 구는 것이 도리어 복수의 함정으로 유인하는 듯하여 마음을 졸이지 않을 수 없었다.

‘신사적이라는 미군은 체면을 유지하기 위해 모른 척 눈을 감고 한국 군인끼리 작당을 해서 나를 모처로 끌고 가 아주 작살을 먹이려는 모양이구나.’

이런 무시무시한 추측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속절없이 얌전히 걷고 있었다. 수갑 찬 두 손을 배꼽 앞에 모은 채.

“손 이리 내봐.”

까만 승용차 뒷자리에 나를 먼저 태운 신사복 사내가 내 곁에 앉으며 다시 부드럽게 일렀다. 차 안에는 모두 다섯이었다. 운전사, 조수석 젊은이, 그리고 뒷자리의 허경욱과 내 좌우의 신사복.

“괜찮아. 이리 내봐. 풀어줘.”

내 오른쪽 신사복의 명령에 따라 내 왼쪽의 신사복이 허리춤에서 못처럼 생긴 열쇠를 빼냈다.

‘수갑을 풀어주고 차에서 내리게 하고는 뒤에서 쏘지 않을까.’

이런 상상을 펼치는 나의 두 손은 잔뜩 뻣뻣해질 수밖에 없었다.

“겁먹었구나. 괜찮아.”

내 손목의 은팔찌가 운전석 의자의 등받이 뒤에 딸린 주머니 속으로 박혔다. 나는 본능적으로 두 손목을 번갈아 주무르고 있었다.

“똑똑하고 배짱도 좋은 놈이 뭐 하러 북에는 갔어? 젊은 혈기에 잘못 생각해서 그럴 수도 있긴 있겠지. 죄를 지었으니 고생이야 해야 되겠지만, 이왕이면 일찍 정신 차리고 열심히 살아야지. 나는 허경윤 대위의 육사 동기야. 전우고 친구지.”

달리는 승용차에서 작은형의 이름을 듣는 찰나, 그만 나는 뛰어내리고 싶었다. 그들이 음모를 꾸며 나를 죽이러 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 명백해졌는데, 거꾸로 나는 죽고 싶었다. 차라리 나를 죽이는 절차를 이행하는 중이라면 좋을 것 같았다. 무슨 낯으로 작은형을 본단 말인가.

“왜 아무 말이 없어? 형님을 만나게 되는데 기쁘지도 않아?”

나는 손목만 문지르고 있었다.

“자식. 미안해서 그러는구나. 너는 임마, 운 좋은 놈이야. 훌륭한 형님을 둔 거야. 너의 형님이 아니었으면 우리가 이런 차에 너를 태우고 다닐 이유가 어딨겠어? 그저 빨갱이 대접만 할 텐데.”

시내를 벗어난 승용차가 삼각산 방향으로 꺾었다.

“코 풀어라.”

내 왼쪽에 앉은 사내가 나의 무릎 위에 휴지를 얹었다. 나는 거부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작은형과 만나야 한다면 조금이라도 더 깔끔하게 만나고 싶었다.

“이제부터는 집안 식구들을 생각해라. 젊은 혈기에 하고 싶은 대로 해봤으니, 이젠 식구들을 배려해봐. 이걸 누가 부탁한다고 듣겠어? 자네 마음의 문제지.”

오른쪽 신사복이 나의 손목을 쓰다듬었다. 승용차가 멈춘 지점은 말끔한 민가들이 늘어선 골목의 어느 집 대문 앞이었다. 작은형을 잘 아는 이들의 눈 밖에 나지 않으려고 나는 차에서 내려 시선조차 옆으로 돌리지 않으며 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마당에는 나무들이 여럿이었다. 맨 앞의 벌거벗은 것은 목련이었다.

“안가라고 들어봤지? 우리가 쓰는 안가야. 기다리고 있으면 허 대위가 올 거다. 여기서 형제가 이틀 밤을 뒹굴고 지내라. 앞으로 어떻게 될지, 오랜 세월 떨어져 지낼지, 어떻게 될지. 무슨 뜻인지 알지?”

“예. 짐작하겠습니다.”

물기가 가셔진 나의 목소리를 스스로 차분하다고 느꼈다. 신사복이 장담하지 못한 대로 무기징역을 살게 될지 사형을 받게 될지 점칠 수 없어도 어쨌든 당장에는 작은형을 만나야 하니 마음의 준비부터 갖춰야 할 것이었다. 마음의 준비?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어떡하든 차분하게 작은형을 만나야 한다는 다짐을 되풀이하는 수밖에는.

날이 저물었다. 나는 둥근 케이크처럼 생긴 천장의 전등에 불을 밝혔다. 고동색 가죽소파가 놓인 거실을 혼자서 지키고 앉아 슬그머니 두려운 느낌을 타는 참에 대문가에 인기척이 나더니 안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긴장을 죄었다. 현관문이 열렸다. 나도 모르게 몸을 일으켰다. 군복 하나가 나타났다. 군모를 쓰고 있었다. 작은형이었다. 작은형과 시선이 마주친 찰나, 얼른 피한다고 모자의 챙 위로 올라간 내 시선이 작은형의 은빛 계급장에 걸리고 말았다. 어린 날의 내가 ‘밥풀 세 개’라고 불렀던 대위 계급장이 칠십 도쯤 기울어져 있었다.

사람의 기억이란 얼마나 신묘한 것일까? 그 안가에서 작은형과 재회한 장면의 다른 모든 것이 뇌리에서 거세되고 오로지 비뚤어진 대위 계급장만 그 금속의 은빛처럼 반짝반짝 빛을 유지하고 있다. 아마 내가 생을 마치도록 녹슬지 않을 빛.

계급장이 기우뚱하게 삐뚤어진 군모를 쓰고 나타난 장교. 이것만으로도 나는 작은형의 곤혹과 고통을 짐작할 수 있었다.

서울 종로의 중화요리 식당에서 자장면과 만두와 배갈을 사주며 아우의 ‘일본행’을 명백하게 반대했던 그때 그 자리 이후로 처음 마주 섰으니, 우리 형제의 만남은 햇수로만 따져 육 년을 꼽아야 했다. 장교 형님 덕분에 굉장한 특혜를 누리는 빨갱이 아우에게 작은형이 가장 먼저 한 말, 이것 역시 삐뚤어진 계급장처럼 잊지 못한다.

“아픈 데 없나? 많이 맞았지?”

이러고 나서 빨갱이 아우를 상대로 작은형이 가장 먼저 벌인 짓은 아우의 옷을 벗기는 일이었다. 작은형은 묵묵히 나의 상체를 발가벗겼다. 아랫도리는 팬티만 남겨두고 홀랑 벗겼다. 이어서 피부과 의사 노릇을 하느라 나신을 샅샅이 살펴보았다.

작은형의 두 번째 한마디.

“체력 단련도 많이 했던 모양이구나. 겉보기엔 까딱없다.”

작은형이 소파에 던져둔 옷을 하나씩 나에게 건넸다. 옷을 다 입도록 입도 벙긋거리지 못하고 있던 내가 작은형을 부둥켜안고 뜨거운 울음을 쏟고 말았다. 오열, 바로 그것이었다. 흐느껴 우는 빨갱이 아우에게 작은형은 침묵을 지켰다. 그저 열심히 등을 쓸어내리며…….

저녁식사도 작은형과 둘이서만 했다. 양주 한 병을 돼지보쌈 안주로 똑같이 나눠 마셨다. 잠자리도 함께 들었다. 말수가 적은 밤이었다. 특별한 일이 없어도 드문드문 만나는 형제끼리 평범한 밤을 맞은 것처럼 형도 아우도 멋대가리가 없었다. 이부자리에 누운 우리는 불을 끈 어둠 속에서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양놈들 거짓말 탐지기를 골려줬다며? 너를 이리로 데리고 왔던 그 친구가 배꼽을 쥐더라. 너는 아마 그 친구가 입회하지 않았으면 또 한번 경을 쳤을 거다.”

그랬다. 그것은 배꼽 잡고 웃어야 할 코미디였다. 내가 모조리 거짓말만 했음에도 그래프엔 잔잔한 냇물만 그려져 있었으니까. 통쾌해서 얼마나 고함을 지르고 싶었던지.

저런 엉터리 기계를 과학적이라고 믿고 있으니, 그건 과학이 아니라 미신이다, 미신!

이렇게 외치면서 말뚝이처럼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그 자리에선 뱉을 수 없었던 말들이 비로소 볶은 깨알처럼 나의 입안에 소복이 고였다.

“다들 얼굴이 일그러졌는데, 웬일로 무사히 넘어간다 했더니, 그분 덕을 본 거구나.”

“보안사의 보배야……. 일본 형님은 아버지 돌아가신 거 알고 계실까?”

“그때는 내가 북에 가 있어서⋯⋯.”

“아버지 묘소엔 참배했나?”

“응.”

“아버지가 임종하실 때 욱이를 많이 찾았단다. 막내가 그렇게 집을 떠났으니 그랬을 거야. 임마, 엄마 한풀이하시는 타령처럼 석 달 더 일찍 오지 그랬어?”

“그때 형 만났으면…… 형한테 맞아 죽을까 봐…….”

나는 눈시울이 뜨끔거렸다. 작은형이 잠시 말을 쉬었다.

“우리 집 아들 셋은 다 면목 없게 됐다. 셋 다 아버지 임종도 못 지켰으니…….”

이번엔 내가 잠시 말을 쉬었다.

“형, 결혼은?”

“했지.”

“조카는?”

“늦었다. 이제 막 딸 하난데, 몇 년 뒤에나 동생 하나 더 봐야지.”

“형수님은?”

“서울 여자야.”

“작은형은 앞으로…….”

나는 말끝을 흐릴 수밖에 없었다.

“동생 잘 둬서 보직이 정식으로 변경됐어.”

“무슨 얘기야?”

“휴전선 중대장이 졸지에 보안사 장교로 왔다.”

내가 궁금해하지도 못하자 작은형이 아우 때문에 겪었던 특별한 일들을 보고하듯 간략히 설명했다.

“9월 9일이었지. 최전방 중대장 사무실로 보안사에 근무하는 육사 동기가 찾아와서 ‘우리 영감이 너 좀 보잔다.’ 했다. 영감은 보안사령관이지. 좋은 일이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고, 그래서 편안한 마음으로 서울까지 동행했더니, 곧바로 서빙고로 연행됐는데……. 서빙고는 보안사 조사실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거기서 호된 조사를 받았다. 일본의 형이 하는 일이나 아우가 일으킨 사고와는 한 점 의혹 없이 무관하다는 것이 밝혀진 뒤에, 육사 동기생을 비롯한 여러 선배가 허경윤 대위를 연좌제에서 구출하기 위한 운동을 폭넓게 전개했다. 이게 다야.”

육군 참모총장이 작은형의 꿈이란 사실을 너무 잘 아는 나는 미안하다는 말조차 입에 담을 수 없어서 기어드는 소리로 물었다.

“그러면 괜찮아지는 거야?”

“나는 옷을 벗어야 한다는 각오를 했다. 여기서 중도 하차하고 다른 길로 가야지, 그런 각오였다. 그런데 우리 동기들이 애를 많이 썼고, 육사 11기 리더 선배들도 애를 많이 써주셨다. 11기는 4년제 정식 육사의 1기생들인데, 현재 영관급 고참 장교들이다. 보안사령관은 김재규 장군인데, 그분도 참 시원시원하게 해주셨어. ‘야, 허 대위, 너 유능하고 신망이 두텁다고 소문이 났더구나. 우리 육군의 희망이라며? 그런 인재를 옷 벗기면 군뿐만 아니라 국가적 손실이지. 너, 오늘부터 보안사에 근무해라. 글을 잘 쓰고 책도 많이 읽었다니까, 내년쯤 봐서 월남에 가서 전사戰史나 쓰고 와. 바람도 쐴 겸에.’ 이러시더구나. 그래서 갑자기 보안사 장교가 된 거야. 순전히 동생 득이다.”

가만히 숨을 몰아쉬는 아우의 손을 작은형이 잡았다. 나는 감옥으로 끌려갔다는 자형과 누님과 조카의 안부, 어머니의 안부, 내가 접촉했던 몇 사람의 안부를 묻고 싶었으나 역시 입이 열리지 않았다.

“자자. 욱이는 오랜만에 편안한 잠을 자봐라.”

“형.”

“왜?”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형 모자에 박힌 대위 계급장은 내가 똑바로 고정해줄게.”

“그게 비뚤어져 있었나? 그렇게 해다오.”

나의 손을 쥔 작은형의 손에 힘이 들어왔다. 그러나 나는 힘을 넣지 못하고 있었다.

 

《꿈속의 만년필》

이튿날 아침에 안가를 떠났다 저물어서 다시 돌아온 작은형의 군모에는 은빛 대위 계급장이 똑바로 박혀 있었다. 내 손을 탄 계급장이 새로 말썽 일으키지 않은 것이 까닭 없이 즐거웠다. 저녁상에는 가자미회가 올랐다. 작은형이 일부러 부탁한 것이라 했다.

우리 형제는 직접 부엌을 들락거려 포항식 회덮밥을 만들었다. 양푼에 밥을 담아 미지근해지도록 식히고 그 위에다 양파, 대파, 풋고추, 마늘 등 채 썰어 모양낸 여러 푸성귀와 생선회를 같이 얹고 초고추장을 듬뿍 뿌려서 골고루 비벼 먹는 포항식 회덮밥.

“먹어둬라. 배탈은 내지 말고.”

나는 열심히 먹었다. 한 양푼 수북한 음식을 싹싹 긁어서 남김없이 집어삼켰다. 감사의 인사 따위는 입 밖에 벙긋거리지도 않았다.

우리 형제는 밤 10시가 조금 지나서 불을 끄고 이부자리에 누워 다시 속의 말들을 꺼냈다. 이번엔 내가 먼저였다.

“어머니는?”

“경찰은 끝났고, 앞으로 검찰에 더 불려 다녀야 할 거다. 건강은 괜찮단다. 강건하시잖아.”

“자형하고 누나는?”

“들어가서 고생하고 계신다.”

“원우는?”

“원우도. 조카는 앞길이 구만린데……. 우선 내가 한숨 돌렸으니 애를 써봐야지.”

작은형의 신음 소리와 같은 대답에 막혀 나는 나와 접촉했던 다른 이들의 안부를 물을 수 없었다.

“욱아.”

작은형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나는 잠자코 기다렸다. 벽에 걸린 작은형의 군모에서 은은히 빛을 내고 있는 계급장에 시선을 박은 채.

“내 주변에는 너한테 벌써부터 전향을 얘기하라고 주문하는 사람도 있다. 그걸 시기상조라고 반대하는 사람도 있고.”

나는 계급장의 은빛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전자는 좀 약삭빠른 품성이고, 후자는 나를 잘 아는 쪽인데…….”

나는 입술이 바싹 마르는 것 같았다.

“나는 어느 쪽인가 하면……. 물론 옷 벗지 않게 해준 사람들에게 보답하고 내 체면을 세우는 것은 하루라도 빠른 전향이지만……. 그래도 강요는 안 하겠다. 다만, 아무리 늦어도 너의 이상과 너의 신념에 오류가 있다고 인정하게 된다면, 그때는 다른 눈치 살필 것 없이 바로 해버려라.”

이번엔 내가 먼저 손을 이불 밖으로 내밀어 작은형의 손을 잡았다.

“작은형만 남게 되는 거잖아? 작은형이 어머니 잘 모셔주고, 나중에 누나네 식구들한테도 최대한 잘해주기를 부탁해.”

나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작은형의 손에도 힘이 들어왔다. 그러자 나의 두 눈가에 이슬이 맺히고 있었다.

이 밤에 어렵사리 잠들었던 나는 가위눌려 소스라치며 눈을 떴다. 만년필이 왼쪽 젖꼭지 부위에 화살처럼 박히는 꿈이었다. 작은형은 평안히 잠들어 있었다. 등을 바닥에 붙이고 거의 부동자세로 잠든 모습은, 내가 평양에서 자아비판에 시달리고 있었을 때 괴롭게 토로했던 ‘자유주의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잠버릇’과 너무나 거리가 먼, 그래서 ‘사회주의적이고 집단주의적인 잠버릇’이라 해야 할 그런 것이었다.

살며시 잠자리를 빠져나온 나는 캄캄한 거실 소파에 앉았다. 야광점이 박힌 벽시계는 3시에 다가서는 중이었다. 나는 통증이 남은 듯한 왼쪽 가슴을 쓰다듬으며 꿈을 돌이켜보았다. 작은형이 어진 웃음을 머금고 건네줄 때의 만년필은 분명히 내 손에 있었지만, 작은형이 등을 돌리자 그것은 갑자기 내 손을 벗어나, 내가 어, 어, 외마디를 지르는 사이에 저만치 멀어진 작은형의 뒤통수까지 날아가더니, 휙 거꾸로 방향을 바꿔 화살처럼 곧장 내 왼쪽 젖꼭지에 박히고 말았다. 워낙 창졸간에 벌어진 일이어서 나는 막을 수도 피할 수도 없었다.

‘왜 작은형의 잃어버린 만년필이 꿈에 나타났을까? 그나마 몹쓸 무기로 변해서?’

나는 찬찬히 까닭을 헤아려보았다. 언뜻 그럴 만한 사정이 떠올랐다. 작은형이 참으로 은근하고 정중하게 ‘전향’을 권유한 것에 대해 나는 잠 못 이루는 침묵 속에서 아우의 일본행을 반대했던 졸업 선물의 만년필에 빗대었다.

‘손때 묻은 만년필을 우송시켜 시인이 되라는 기대와 격려로써 일본행을 막으려 했던 표현, 너의 이상과 신념에 오류가 인정되면 전향하라고 권유한 표현, 여기엔 똑같은 종류의 주도면밀한 심리적 수완이 깔려 있지 않는가?’

이 의심은 작은형을 깎아내리는 짓이었다. 적극적으로 덤벼들어야 자신에게 유리해질 사안에 대해 오히려 은유적으로 부드럽게 접근하는 작은형의 품성을 인격의 일부로 보지 않고 목표 달성을 위해 의도적으로 동원한 일종의 수단으로 격하시킨 짓이었는데, 작은형의 잃어버린 만년필로부터 꼼짝없이 혼쭐난 새벽이었다.

 

《오, 나으리들》

보안사 안가에서 작은형과 헤어져 다시 미군 방첩대로 실려 왔던 나는 그날 야간열차로 서울을 떠나 이튿날 여명을 맞으며 대구에 떨어졌다. 이번에는 경찰서 유치장 독방에 갇혔다. 사흘을 보냈다. 그제야 너무나 지각하고 있던 정식 구속영장이 떨어졌다. 그래서 대구 외곽의 교도소로 압송되었다. 그깟 사흘이야 그때부터 창창히 기다리는 소털처럼 많은 감옥의 날에 비하면 순간에 불과했지만, 잊을 수 없는 일화가 거기서 오래 머물렀던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야간열차의 의자에 구겨져야 했던 노곤한 몸을 주체할 수 없어서 닭장에 갇힌 병든 닭처럼 독방에 앉아 꼬박꼬박 졸고 있는 허경욱을 두 젊은 순경이 경찰서장 앞으로 데려갔다. 물론 수갑을 채워서.

경찰서 건물의 가장 높은 방에는 경찰서장보다 더 높은 계급이 기다리고 있었다. 키는 작아도 힘깨나 쓸 만한 빵빵한 몸매의 사내가 입에 물고 있던 까만 마도로스 빨부리를 손으로 옮기며 천천히 소파에서 일어나 마치 면도칼로 천을 길게 자르듯 나의 전신을 째려보았다.

“그래, 너야? 김신조보다 더 악질이라고 소문난 허경욱이란 놈이?”

그의 빨부리와 눈초리와 느끼한 목소리가 나의 목구멍에 가시처럼 걸려서 나도 모르는 틈에 수갑 밑의 두 손이 부르르 떨렸다. 호랑이 말씀에 감히 자존심 상한 강아지가 욱 치받는 분노를 간신히 억누른 꼴이었다.

“어쭈. 요것 봐라. 악질 빨갱이 주제에 모욕감을 느낀다는 것이렸다.”

그가 내 쪽으로 다가섰다. 경찰서장을 부동자세로 뻣뻣하게 만드는 신분을 나는 똑바로 쏘아보았다. 주먹을 날리면 발길로 맞서겠다는 결의가 나의 동공에 서려 있었을까. 일단 그가 서로의 사정거리에 못 미치는 지점에서 멈췄다. 날씬한 체구의 경찰서장은 즉각 위치를 정정해 그의 등을 지켰다.

“정말 눈에서 핏빛이 팍팍 튀는 놈이구만. 이런 빨갱이가 육군 대위의 친동생이다 이거지. 육군 보안사가 그렇게 높아? 짜식들이 뭔데, 우리가 잡은 빨갱이 새끼를 지네들이 조사할 게 있다고 넘기라 마라 지랄을 떨었던 거야. 혹시 임마, 너의 형도 대한민국 육군에 심어진 첩자 아냐? 맞지? 그렇지?”

그의 손가락질에 맞서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오늘 맞아죽는 한이 있어도 이 자식은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이런 다짐이 나의 손금에 땀으로 고였다.

“이 새끼가 이거 누구 앞에서 주먹을 쥐나.”

굉장히 높은 권좌에 올라앉는 것이 버겁게 보일 만큼 빵빵한 사내가 성큼 한 발을 내디뎌 빨부리로 나의 배꼽을 쿡쿡 찔렀다.

“정말 듣던 대로 악질이구나. 너는 임마, 아무리 세탁해도 빨간 물이 빠질 수 없겠어. 그럴 바엔 아예 사라지는 게 이 나라에도 좋고 너희 집안에도 도움이 되겠어. 무슨 말이냐 하면, 너는 사형이 제격이야. 빨갱이는 아무리 빨아도 빨갱이니까 태워버리는 게 상책이다, 이게 내 신조야. 김신조가 아니고, 내 신조. 알아?”

나의 입술이 떨어졌다.

“참 한심한 인간을 다 보겠네. 오늘 아침에는 쥐똥 섞인 꽁보리밥을 주더니, 당신이 그 밥을 지은 주방장이었나. 나이도 지긋해 보이시는데, 왜놈들 밑에서 고등계 형사 노릇도 했겠네. 요즘은 양놈이 주인인가? 양담배 빨부리로 자식뻘 되는 젊은이의 배꼽이나 쑤셔대고, 점잖치 못하게 이거 왜 이럽니까? 더구나 우리 형님이 당신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우리 형님에 대한 모독이니까 절대로 아무 입에나 올리면 안 되는 겁니다. 아셨나요?”

“이 새끼, 이건 정말 김신조보다 더 악질적인 놈이네. 여러 군데서 말들이 많이 들어와서 어딘가에 좀 봐줄 만한 구멍이 있나 해서 만나러 왔더니, 이건 완전히 상빨갱이네. 좋아. 자식아, 너는 이제 죽었어! 내 손에 빨간 물 묻을까 싶어 손대기도 싫다, 임마. 야! 꼴도 보기 싫으니까 얼른 처넛!”

두 순경이 나를 억세게 돌려세웠다. 나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나야말로 그의 꼬락서니를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았다. 모질게 씨부렁거리는 소리가 나의 등에 꽂혔다.

“어떤 미친놈들이 저런 악질을 살리겠다고 지랄들이야. 정말 손에 빨간 물 묻게 될 것 같아서 손대기도 싫어.”

경찰서장 방에서 끌려나오는 걸음에 그대로 취조실로 던져져 흠씬 얻어터지고 등겨 가마니처럼 유치장 독방에 부려진 나는 그래도 마음이 평안했다. 아니꼽기 짝이 없는 높은 놈을 오지게 골려준 고소함이 자꾸만 미소로 피어나는 것이었다.

‘내가 왜 그렇게 신상에 도움이 못 되는 만용을 부렸을까?’

요즘에도 어쩌다 그 장면이 떠오르면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된다.

‘혈기 넘치는 젊음을 참지 못하여 그랬을까?’

물론 이것이 바닥에 깔렸을 테지만, 그때 허경욱은 마음을 비우고 있었다는 사실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작은형과 이틀 밤을 함께 보내고 헤어진 나는 쇠뭉치 같은 결심을 품고 있었다.

‘작은형의 결백이 밝혀져서 군복을 벗지 않아도 되는 기적이 일어난 마당에 내가 더 무엇을 바란단 말인가. 사형을 받아도 깨끗이 죽자.’

이 결심은 야간열차로 호송되는 밤의 긴 시간을 마치 방학을 맞아 고향으로 돌아가는 학생 같은 기분에 젖도록 해주었다. 싸늘한 유치장 독방에 갇혔을 때는 그것이 이 좁은 공간을 자유의 공기로 넘쳐나게 하겠다는 의욕을 일으켰고, 두어 시간 지나서 쥐똥 섞인 보리밥이 발치에 놓였을 때는 그것이 스스로 존엄을 지키기 위해 모욕의 음식을 거들떠보지도 않게 하는 힘을 주었다. 잡힌 뒤로는 최초로 누리는 평안함과 당당함과 도도함, 이것이 죽음을 각오한 한 젊은이의 내면에 맑은 냇물처럼 흐르는 시간이었다.

경찰서를 하직하고 마침내 교도소 독방으로 옮겨진 첫 밤에 그 아니꼬운 높은 작자와 맞섰던 장면이 현실을 고스란히 재현한 꿈으로 펼쳐졌다. 왜 그따위 꿈을 새 둥지의 첫 밤에 꾸었는지 몰라도, 나는 그 꿈을 통해 지나친 평안함과 당당함과 도도함 때문에 깜박 놓치고 있었던 하나의 추측을 포착하게 되었다.

‘작은형 주변의 인물들이 작은형에게 도움을 주려고 나를 위해 모종의 애를 쓰고 있었구나. 보안사가 나를 조사하겠다고 했던 모양이구나. 두 기관 사이에 알력이 생겼던 모양이구나.’

이런 추측이 나의 평안함과 당당함과 도도함에 균열을 일으키진 않았다. 작은형에 대한 미안함만 더 키웠을 뿐.

교도소에서 검찰청으로 불려 다니는 일이 막을 올렸다. 정식으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기 위한 관문에 들어선 것이었다. 내가 처음 검찰청 마당에 내렸을 때, 하늘은 암울한 회색이었다. 눈이라도 펑펑 쏟지 않으면 하중을 견디지 못한 허공이 무너져내려 도시를 덮칠 것만 같았다. 그것을 나는 외면하지 않았다. 고작 삼 초에 그쳤지만 고개를 빳빳이 들고 똑바로 쳐다보았다. 불길한 징조 따위는 이미 나의 것이 아니었다. 나는 거듭 죽음을 각오하고 있었다. 모든 절차의 끝에 사형 선고가 기다리고 있어도 나는 태연하게 수용하리라. 그래서 나의 발길은 가벼웠다. 평안함과 당당함과 도도함이 여전히 나의 내면을 지배하는 시간이었다.

허경욱을 담당한 검사가 노력을 바쳐 작성한 글은 여기에 옮기지 않겠다. 내가 해온 이야기에서 뼈대만 간추린 요약문과 한 보따리 넘는 각종 수사기록이 전부였으니까, 새로운 내용이 없다. 다만 한 가지, 그 검사와의 첫 대면에 겪었던 에피소드는 그냥 넘길 수 없다. 그의 이름이 나의 기억에 초롱초롱 남았지만, 아직 삶의 종지부를 찍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으니 밝히진 않겠다.

날씬한 체구에 병적인가 싶게 창백한 피부를 가진 검사가 안경알 너머로 나를 빤히 쏘아보다 안경다리를 한 번 만지작거렸다.

“나의 전신을 자세히 살펴봐.”

이것이 검사의 입에서 떨어진 첫마디였다. 수갑 찬 새파란 빨갱이를 앞에 앉혀둔, 마흔 살에 못 미쳤을 검사. 눈도 깜박이지 않고 그의 시선을 정통으로 받고 있던 나는 짧게 당혹스러웠다. 대체 무슨 수작을 꾸미는가. 나의 의구심을 그가 금세 풀어줬다.

“북에서 나보다 더 잘 입은 사람을 본 적 있어? 바지는 미국제 잭슨이고, 와이셔츠는 프랑스 실크고, 구두는 이탈리아제야. 북에서 이런 차림을 본 적 있어?”

하마터면 나는 웃음을 터트릴 뻔했다.

‘뭐 이따위 어린애 같은 인간이 다 있나.’

그가 대답을 다그쳤다., 나의 심사는 꽈배기처럼 뒤틀렸다.

“모릅니다. 우선 저에게는 미국제 잭슨인지 프랑스 실크인지 이탈리아제 구두인지 그걸 식별할 눈이 없어서 모른다고 대답하는 겁니다. 거기다가 북에서는 한 번도 옷자랑 하는 정신의 소유자를 만난 적이 없었으니, 좋은 옷을 입고 있어도 저로서는 그게 미국젠지 프랑스젠지 이탈리아젠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야, 북에는 이런 옷을 입을 수 있는 자유가 없어. 그 얘길 하고 싶었던 거지, 내가 너에게 옷자랑을 해서 북한보다 남한이 더 잘사는데 북에는 뭐 하러 갔더냐, 뭐 이런 수준의 얘기나 하자고 하는 게 아니니까 헛다리는 짚지 마.”

하얀 검사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엉뚱하게 둘러대며 허둥지둥 빠져나가는 그의 꼴사나운 잔머리를 나는 놓치지 않았다. 참으로 한심한 ‘나으리’였다.

 

(내가 마흔 살이 넘은 뒤에야 경희 누님한테 듣기로는, 그 검사 밑에서 일한 나이 지긋한 계장이 어머니를 조사하고 나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할머니는 그저 평범하기 짝이 없는 시골 아낙인데, 아들 셋은 참 대단한 인물들로 낳았다고. 비아냥이 아니라 놀라움에다 칭찬을 넣은 것이었다고. 그것이 어머니의 애절한 호소를 낳았다고 한다. 두 아들을 잘못 키운 어미의 죄니 나를 잡아 가두고 대신에 우리 막내를 살려달라는. 비록 어머니의 손수건만 젖었으나, 그래도 당신은 속으로 한 조각의 위안이라도 느끼지 않았으랴. 아니다, 아니다. 이건 순전히 나의 아전인수다. 허경욱만 직접 상대하고 가족들 조사는 아랫사람에게 시켰을 검사, 그 ‘나으리’를 당신은 우러러보면서 우리 장남 경민이와 우리 막내 경욱이는 왜 저런 인물이 되지 못했는가를 통탄하지 않았으랴.)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