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상자료원, 다양한 자료에 각종 통계 더해

(한국영상자료원이 엮은 '1980년대 한국영화' 표지)
(한국영상자료원이 엮은 '1980년대 한국영화' 표지)

[문학뉴스=남미리 기자] 한국영화가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요즈음이지만 어느 날 불쑥 등장한 현상이 아니라 지나간 시간 동안 우리 영화계의 모든 노력이 쌓여서 이뤄진 것이다. 그래서 과거를 정리해 봄으로써 우리 영화의 앞날을 더욱 활기차게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영화의 역사를 정리하는 작업의 일환으로 한국영화사 시리즈를 펴내고 있는 한국영상자료원(KOFA)은 『21세기 한국영화』, 『1990년대 한국영화』를 잇는 제3탄으로 『1980년대 한국영화』를 출간했다.

<‘서울의 봄’부터 코리안 뉴웨이브까지>를 부제로 하는 이번 책은 1979년 10월 26일 저녁 7시 40분, 궁정동 안가에서 울린 총성으로 시작해 〈영웅본색〉 주윤발의 대사 “강호의 도의가 땅에 떨어졌구나”로 끝나는 ‘Memoir’를 필두로 각 필자의 원고와 아카이브 자료를 소개하는 지면까지 1980년대 한국영화의 전체상을 그려 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공공 필름 아카이브인 한국영상자료원의 장점을 발휘해 다소 전문적인 내용일 수 있지만 대중 독자들도 편하게 만날 수 있는 ‘한국영상자료원만이 낼 수 있는 한국영화사 책’이라는 기획 의도에 가장 근접한 책이라 할 수 있다.

흔히 1980년대 한국영화는 ‘촌스럽다’거나 ‘저질이다’, ‘에로영화밖에 없다’라고 평가된다. 그러나 영화는 언제나 당시의 사회상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 1980년대 한국영화가 갖고 있는 지나친 진지함과 우울, 폭력성은 당시 영화인들이 갖고 있었던 문제의식들과 맞닿아 있다. 정치적 민주화를 가로막는 독재권력의 감시 속에 충무로의 기획 제작 관행이 답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에서 젊은 감독들의 새롭고 활기찬 재능을 기대하긴 어려웠다. 한국영화는 여전히 외화수입권을 따기 위한 구색 맞추기용 생산물의 성격이 강했고, 많은 영화가 프로덕션의 낙후성과 부실한 완성도를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1980년대는 ‘애마’부터 ‘달마’까지 에로영화와 예술영화가 공존하고, 이장호·배창호·박광수·장선우·이명세 등 새로운 영화운동 정신이 기존 충무로 시스템과 결합한 ‘코리안 뉴웨이브’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책의 1부는 정성일·이효인의 1980년대 한국사회와 영화에 대한 회고록을 담고 있으며, 2부는 정종화(총론)·허남웅(장르)·김영진(미학)·김혜선(배우)·유운성(독립영화)·공영민(영화문화)이 참여했고, 영화인 구술 자료를 바탕으로 구성한 3부는 이수연이 담당했다. 3부의 영화인 인터뷰는 1980년대 한국영화산업에 대해 영화인 30명이 남긴 기록을 활용했다. 1980년대 전국 29개 ‘극장 풍경’과 영화인들의 증언으로 구성한 ‘구술로 보는 1980년 한국영화’, ‘1980년대 영화산업 주요 통계’ 등을 부록으로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