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우이위논어(愚以爲論語) 7]

 

                    子謂子夏曰 “女爲君子儒! 無爲小人儒!
                    ”자위자하왈 “여위군자유! 무위소인유!”

 

                                                 이인우 (일본 리쓰메이칸대학 객원연구원)

 

선생님이 자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군자다운 선비(儒者)가 되어야지, 소인 같은 선비가 되지 말아라.” -옹야편

<주례>에 따르면, “사(師)”와 “유(儒)”는 모두 서주(西周) 시대 관학(官學)의 교사이다. “사이현득민(師以賢得民)”에서 사(師)는 학생들의 도덕과 품행을 배양하는 것을 임무로 한다. “유이도득민(儒以道得民)”에서 유(儒)는 학생들에게 학술(지식과 기능)을 전수하는 사람이다. 춘추시대에 주나라 왕실이 이미 쇠퇴했음에도 학술은 아직 민중에 전파되지 않고 있었다.

이때 공자가 개인 신분(私人)으로 처음 학교를 세워 덕(德)과 예(藝)를 제자들에게 가르쳤다. 이로부터 사(師)와 유(儒)가 다시 하나로 합쳐졌다. 이후 공자의 학술은 유(儒)로 칭해졌고, 공자 또한 유라 불린 학파의 영수로 여겨지게 되었다.

儒의 신분도 변화하여 그 함의가 넓어지고 확장되어 갔다. 최종적으로 춘추 말기에 이르러, 유는 보통, 지식과 기능을 가진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 되었다. 여기에서 지식과 기능이란, 禮, 樂, 射, 御, 書, 數 등 육예(六藝) 및, <詩> <書> <易> <春秋>와 관련된 지식, 기능을 말한다.

<설문해자>(후한 시대 허신이 편찬한 한자 자전)에는 “유는 부드러운 것이다. 술사를 가리킨다(儒, 柔也, 術士之稱)”고 나온다.

장태염(章太炎) 선생은 이에 대해 “술사의 뜻 또한 넓다. 문명이 처음 시작될 때는 인성이 강포하였으나 교육을 통해 점차 부드럽게(摧剛爲柔) 되었다. 유(柔)는 교육을 받아 길들여짐을 가리키는 것이지, 유(儒)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고 하였다.

<묵자> 비유(非儒) 편을 보면 “상례(相禮)” “치상(治喪)” 등을 전문 직능으로 하는 사람들이 대개 “유자(儒者)”라고 불렸다.

공자가 자하에게 “소인유”는 되지 말라고 가르친 것은 도대체 무슨 말인가? 이것은 먼저 자하라는 사람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자하는 공문의 문학과를 대표하는 중요한 제자(선진 편)이다.

 

    (공자가 살구나무(또는 은행나무) 아래서 제자들을 가르쳤다는 전설을 기념해 세운 행단(杏壇). 중국 산둥성 취푸(곡부)시 공자묘에 있다.  한나라 때 처음 지어진 뒤 개건을 거듭했으며,  현재의 액자 글씨는 청나라 건륭제가 쓴 것이다. 사진=이인우)
    (공자가 살구나무(또는 은행나무) 아래서 제자들을 가르쳤다는 전설을 기념해 세운 행단(杏壇). 중국 산둥성 취푸(곡부)시 공자묘에 있다.  한나라 때 처음 지어진 뒤 개건을 거듭했으며,  현재의 액자 글씨는 청나라 건륭제가 쓴 것이다. 사진=이인우)

문학은 고대 전적, 문장,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시경>, <서경> 분야를 가리킨다. 공자는 일찍이 “상야불급(商也不及)”(자하 이름이 복상(卜商)이다)이라 하여, 자하의 성격이 지나치게 조심스럽고, 과단성이 부족하고 대범하지 못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혹자는 공자의 이 말을 자하가 지향이나 경지가 원대하지 못하여 훗날 맹자가 말하는 대장부의 기개가 결핍되었음을 말하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소인유”에서 “小人”을 어떤 뜻으로 해석하느냐이다. <논어> 가운데 “소인”은 세 가지 뜻이 있다. 첫째, 사회 지위가 낮은 사람이다. 즉 신분 상으로 소인이란 뜻이다. “야인(野人)”의 의미와 유사하다.

둘째, 도덕 품성이 낮은 사람이다. 도덕적으로 소인이라는 뜻이다. 셋째, 보는 시야와 품은 생각, 지향하는 바가 얕고 편협한 사람이다. 국량이 작은 사람(器量小人)을 가리킨다.

분명한 것은, 공자가 자하에게 “소인유를 하지 말라”고 한 가르침은, 작은 차원의 문자적 훈고 따위에만 매달리지 말고 좀 더 넓은 안목과 포부, 원대한 지향을 품고 더욱 높은 인격을 갈고 닦아 더 큰 사업을 성취하기를 촉구하는 것이다.

후학들에게 공자의 이런 충고는 더욱 넓고 포괄적인 의의를 지닌다. 국량이 작은 선비에서 비롯된 “소인유”의 함의는 많은 경우 “품덕의 차이”로 의미가 전향됐다. 이를 비교적 정확하고 깊이 있게 밝힌 사람은 순자(荀子)이다.

그는 <순자> 유효(儒效) 편에서 선비를 “속유(俗儒)” “아유(雅儒)” “대유(大儒)”의 3종류로 나누었다. 여기서는 속유에 대해서만 말하겠다. 그들은 대강 이런 부류이다.

“유복, 유관 같은 의관을 갖추고 아무런 구체적인 내용 없이 입으로만 요순의 가르침을 떠벌린다. 세상을 어지럽히기에 족한 부류이다. 그들의 학문은 난삽하고, 견해와 주장은 거칠고 앞뒤가 맞지 않는다.

문무주공(文武周公. 문왕, 무왕, 주공. 공자가 이상으로 여긴 주나라 건설자들. 무왕과 주공은 문왕의 아들이다)과 공자의 도를 제대로 알고 있지도 않다. 가장 중요한 예의 실천에 대해서는 모른 체 하고, 그 다음으로 중요할 뿐인 경전 암송에만 치중한다. 그들의 행위와 세간 속인들의 행위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이는 묵자의 비판과도 큰 차이가 없다.

“그들은 입만 열면 요순을 내세워 무지한 사람들을 사기쳐서 의식(衣食)을 편취하고, 약간만 지식과 명성이 쌓여도 의기양양 으시댄다. 이런 자들은 현달한 귀족에게는 납작 업드려 그들을 좌우에서 받드는 심복 소인이 되거나, 귀족들을 추어올리기에 바쁜 식객처럼 현달귀인의 포로가 되는 것에 만족할 뿐, 그밖의 다른 목적은 없는 부류이다.”

순자가 말하는 바, “속유”를 도덕의 측면에서 말하면 바로 “소인유”가 된다. 춘추 이후에 이런 유자들이 천태만상인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오늘날 별의별 지식인들이 다 있는 것과 매한가지다.

이야기를 공평하게 해서, 공자에 비해 약간 뒤의 사람인 묵자가 유자에 대해 꼬집은 다음과 같은 적나라한 양태는 일부 사실에 부합하고 또 일리도 있다.

“부잣집에 초상이 나는 것은 아주 기쁜 일이지. 거기야말로 우리의 먹을 것, 입을 것이 나오는 곳이니.”(<묵자> 비유 편)

속유의 검은 속에 드리운 소인의 얼굴이 선명하다.

 

<노트>-----------------------------------

 

논어가 유가의 경전이지만 논어 전편을 통해 儒라는 글자는 딱 여기에서만 나온다. 이를 근거로 儒라는 직능상의 용어는 당시 사람들이 공문의 학생을 지칭할 때 쓴 말로 보는 사람도 있다. 즉 유는 공자학파의 자칭이 아니라 타칭이라는 것이다.

유의 원류는 본래 무축(巫祝. 무당)이었다. 이들은 기우제를 집전하는 무리이므로 제사의식을 중시했다. 무축의 시대가 지난 뒤 점차 의례의 본말이 전도되는 양상이 심해지고 민폐가 적지않게 발생했다. 묵자 같은 사상가가 그래서 유자를 “인민을 등쳐먹는 자”로 격렬히 비난한 것이다.

공자 당세에도 이런 조짐이 있었기에, 촉망받는 어린 제자가 지엽말단적인 것에 얽매여 자칫 속유의 길로 빠질까 걱정하신 것이다.

정다산은 이 구절에 대해 “공부를 할 때 그 마음이 道에 있으면 ‘군자유’, 그 마음이 공명심과 출세에 가 있으면 ‘소인유’”라고 과거를 보는 조선 선비의 입장에서 공자 말씀을 해설했다.

일본 실학자 이토 진사이는 “군자다운 유자는 천하의 일을 자신의 임무로 여겨 세상 사람을 구제할 뜻을 가진 사람이다. 소인 같은 유자는 다만 자신을 착하게 하는 것에 만족할 뿐 남에게까지 미치지는 못한다”고 설명한다.

송나라 성리학자로 주역(易)의 대가였던 소강절은 재미있는 말을 했다. 군자와 소인을 품성에 비유해 “선비의 품성이 군자 6, 소인 4 정도면 좋은 정치를 할 수 있다”고. 인품 안에 소인 기질이 40%를 넘지 않으면 좋은 정치인이라는 것이다.

아주 현실적인 관찰이긴 한데, 과연 요즘 대한민국은 어떨까? 소인 60%에 군자 40%면 좋은 정치인? 그나마도 희귀종일 것 같다. 도처에 소인 순도 100%가 넘쳐나는 마당이니.

 

   (이인우 리쓰메이칸대학 연구원)
   (이인우 리쓰메이칸대학 연구원)

저술·번역가. 1988년 한겨레신문 창간에 참여한 뒤 한겨레 문화부장, 편집부국장, 제작국장 등을 지냈다. 2016년 『삶의 절벽에서 만난 스승 공자』(2016)를 짓고, 2022년부터 일본 교토 리쓰메이칸대(立命館大) 객원연구원으로 논어 등 동양고대사상을 공부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음식천국 노회찬』(2021) 『서울백년가게』(2019) 『조작간첩 함주명의 나는 고발한다』(2014), 『세상을 바꾸고 싶은 사람들 ― 한겨레 10년의 이야기』(공저, 1998)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