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의 리그’가 천민자본주의와 결탁하면 어떻게 될까?

[어바리의 말본새 17]

미국이란 나라에 국립영화등기부(National Film Registry; NFR)라는 게 있는 모양이다. 국립영화보존위원회(National Film Preservation Board; NFPB)에서 해마다 문화적·역사적·미학적으로 가치 있는 미국의 영상작품들을 선정하여 의회도서관에 영구 보존하는 등기부라고 한다. 언젠가 공중파 방송의 주말 영화로 본 적이 있는 <그들만의 리그>도 영구 보존된 작품이라고 한다.

<그들만의 리그>를 재미있게 보고 오래 기억할 수 있었던 까닭이 있다. 대작도 아니고 명작도 아닌 평범한 스포츠 코미디 드라마 영화인데, 뻔한 결말에도 불구하고 특이한 소재가 관심을 끌었고 특히 귀에 걸린 제목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기 때문이다.

 

인터넷 나무위키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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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으로 선수들이 입대하는 바람에 메이저리그가 중단되자 고육지책의 대타로 여자 프로야구팀을 만드는데, 농장에서 젖을 짜던 도티(지나 데이비스 분) 자매도 스카우트된다. 도티가 속한 팀의 감독은 메이저리그 스타 선수 출신이지만 무릎 연골이 망가지는 바람에 입대하지 못하고 날이면 날마다 술만 퍼마셔 대던 듀간(톰 행크스 분)인데, 처음에는 여자야구라니까 우습게 보고 콧방귀만 뀔 정도였다.

당연한 스토리 전개대로 선수들이 열성을 다하고 관중들도 차츰 여자야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자 듀간 감독도 정신을 차리고 열과 성을 다해 진심으로 선수들을 지도하며, 마침내 여자야구 월드시리즈에 진출하여 승부를 가리기에 이른다.

영화는 수십 년이 지난 후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여자야구 전시관 개설 기념으로 당시의 선수들과 관계자들을 초청하여 행사를 벌이는 장면으로 마무리되는데, 듀간 감독은 이미 유명을 달리했는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사진만 보여준다. 

영화는 1992년에 만들어졌는데, 영화 제목에서 유래한 ‘그들만의 리그’는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끼리만 이해할 수 있는 끈끈한 연대’를 일컫는 긍정적인 의미의 속어(俗語)로 쉽게 입에 올리는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말도 시대가 변하는 탓인지 애당초 감동을 주었던 제목의 울림과는 달리 ‘지네들끼리만 무슨 일인가 꾸미는 꿍꿍이 집단’을 지칭하는, 다소 비아냥거리는 뜻으로 변질이 되었다. 대체로 다른 사람들을 배제하고 불평등을 심화하며 사회 구조를 경직시키는 부정적인 의미의 기득권 집단을 일컫는 데 쓰인다.

최근에는 더욱 의미가 왜곡되어 객관적으로 보면 별 볼 일 없는 존재들끼리 서로를 칭찬하거나 비난하는 행위를 에둘러 표현할 때도 많이 사용된다고 한다. 2024년의 대한민국이라고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마침 선거철이니까 좌우 불문하고 물불 가리지 않으며 나대는 정치집단들이 ‘그들만의 리그’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그뿐만 아니라 팬들의 환호를 먹고 자라는 스포츠 스타들이나 연예인들, 그리고 방송에 자주 얼굴을 비치는 기회를 이용하여 광고계로 진출하는 사람들까지 ‘그들만의 리그’는 날마다 새끼를 친다는 느낌이 든다. ‘그들만의 리그’가 새끼를 치건 전염병처럼 번져나가건 탓할 바는 아니로되 천민자본주의의 버르장머리를 그대로 닮아서 말끝마다 돈 이야기를 덧붙이는 짓거리는 제발 삼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경찰서나 검찰청의 포토라인에서 마스크나 모자로 몰골을 가리는 모습이 아니고, 워렌 버핏이나 빌 게이츠처럼 큰손의 기부 천사 노릇들이나 하면서 ‘그들만의 리그’를 영위한다면 누가 뭐랄까? 

[‘어바리’는 ‘어리바리하게 말을 늘어놓는 사람’쯤으로 보면 될 듯합니다. ‘말본새’는 ‘말하는 태도나 모양새’라는 뜻입니다. 한국전쟁 이후에 태어나긴 해도 어바리의 연식이 어느덧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었으니 ‘반세기 문청(文淸)’쯤으로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백세시대’를 맞아 이제 슬슬 ‘글쓰기’로 모진 술버릇 대신하고 싶다는 ‘희망가’이기도 하답니다.]